참고말씀: 살전 5:18
목표: 받은바 은혜를 감사함으로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도록 하자.
오는 11월 22일은 미국서 지키는 “Thanksgiving Day”입니다. 그리고 18일은 교회에서 “추수 감사주일”로 지키는 날입니다. 그런데 요즘 미국은 이날이 진정한 감사를 하나님께 드리는 날보다는 가족들을 만나러 여행을 가고, 또는 Turkey를 구워 먹는 날로 전락되고 말았습니다. 옛날 청교도들의 신앙은 다 어디로 갔단 말입니까? 우리는 청교도의 신앙으로 반드시 돌아가야만 합니다. 곧 하나님께 감사하는 생활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추수 감사절의 참 주인공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이번 추수 감사절에 Turkey를 구워먹을 망정 하나님께 대한 감사는 꼭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불신자들이야 어떻든 우리는 그들과 달라야 하지 않겠습니까?
1.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문둥병자 10명이 예수님을 만나 뭐라고 크게 소리 를 높여 말했습니까? (눅 17:11-13)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어느 한 촌에서 만난 사람들은 10명의 문둥병자들이었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지만 그 당시에도 문둥병자들은 세상 사람들과 분리 되어 살았습니다. 이들은 세상 거리에 마음 놓고 나올 수가 없었습니다. 거리에 한 번 나오려면 전신을 다 가리고 눈만 내 놓으면서 사람이 자기 근처에 접근해 오는 것을 스스로 피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이들은 거리를 지날 때마다 늘 “부정하다”를 외쳐야 했던 것입니다. 이 불쌍하고 가련한 사람들에게 소원이 있었다면 무엇이었겠습니까? 부였겠습니까? 명예였겠습니까? 권력이었겠습니까? 인기였겠습니까? 아닙니다. 이들에게 오직 한 가지 간절한 소원이 있었다면 그것은 자신이 문둥병에서 완전히 치료를 받아 세상 사람들과 똑 같은 정상인이 되는 것이었을 것입니다. 이럴 즈음에 이들은 예수님께서 자기들이 머무는 촌에 들어오셨다는 소문을 듣고는 예수님께 도움을 요청했던 것입니다. 13절을 보시면 “소리를 높였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이들의 간절한 호소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문둥병자들을 보면서 우리 자신들을 한 번 묵상해 보도록 하십시다. 우리에게도 이런 간절한 요청을 우리 주님께 드린 적이 있습니까? 꼭 이들과 같이 육신의 병을 위해서는 아니더라도 우리가 할 수 없는 일들을 놓고 하나님께 이처럼 간절히 매달린 적이 있습니까? 아마 많은 분들은 이러한 경험을 가지고 있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께 이처럼 간절하게 무슨 문제를 놓고 간구를 한 적은 없다 하더라도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 일반적인 도움을 요청하고는 살 것입니다. 아마 기도하면서 “저를 불쌍히 보시옵소서” 혹은 “누구 누구를 긍휼히 보시고 도와 주시옵소서”라는 기도는 드렸을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은 어떠했습니까? 아마 기도 응답의 체험을 하신 분들이 상당히 많을 줄 압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들이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할 때 우리를 긍휼히 여기십니다. 그리고는 도움의 손길을 우리에게 주시곤 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한 평생을 살면서 얼마나 많은 하나님의 도움의 손길을 받았나요? 아마 헤아릴 수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사랑을 베푸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렇듯 우리에게 많은 좋은 것을 주신 하나님께 우리는 무엇을 드렸습니까? 우리는 이러한 감사 계절에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그 모든 축복들을 한 번 헤아려 보아야 할 것입니다.
2. 문둥병에서 나음을 받은 한 명은 돌아와서 예수님의 발 아래 엎드려 무엇을 했습니까? (눅 17:15-16)
사례했다.
예수님께서는 이들의 요청을 들으시고 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고 하셨습니다. 이상하게도 주님은 그들의 문둥병을 바로 그 자리에서 고쳐주지 아니하시고 다만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고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말씀을 이해하려면 예수님 당시의 사회법을 조금 알아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그 당시의 법에 의하면 사람이 문둥병자이고 아닌 것을 제사장들이 직접 판정을 내렸습니다. 의사가 아니었습니다. 제사장들이었습니다. 그 때에는 문둥병과 비슷한 병들이 많았는데 저들은 자기의 병이 다 난 것 같으면 먼저 제사장에게 가서 자기의 몸을 보이고 이제 제사장이 “너는 정하다”는 판정을 내려야 저들은 세상에 마음 놓고 나올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저들에게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고 말씀하실 때에는 저들이 분명 제사장들에게로 가는 그 길 도중에 이들의 문둥병이 다 나을 것이라는 사실을 미리 암시하시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제 이들은 제사장들에게 가다가 자신들의 몸이 깨끗해진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이 때 아마 저들은 노상에서 기뻐서 껑충껑충 뛰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무엇보다도 빨리 제사장들에게 가서 이제 자신들도 정상인이라는 판정을 받고 세상 사람들과 동일한 권리를 찾기 원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각기 자기들의 걸음을 재촉하여 제사장들에게 갔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중의 한 사람은 자기의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예수님의 발 아래 엎드리어 사례했습니다. 곧 감사의 표시를 했던 것입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입니까? 감사했던 그 사람인들 빨리 제사장에게 가서 자기도 정상인이라는 판정을 받기를 원치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이 사람은 인간의 마땅한 도리를 알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감사하는 모습은 참으로 모든 사람이 보기에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결국 더욱 큰 은총을 받게 됩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두 사람에게 똑 같은 선물을 사 주었는데 한 사람은 감사하다는 표시를 하고 다른 한 사람은 그것이 당연한 것처럼 아무 소리가 없었다고 합시다. 그럼 이 두 사람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어떻게 변하겠습니까? 우리에게 감사를 한 사람에겐 계속 더 좋은 것을 주기를 원할 것입니다. 그러나 감사할 줄 모르는 그 사람에겐 앞으로는 인색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사람을 꼭 차별 대우하시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인간적으로 생각해 볼 때 하나님께서 누구에게 더 큰 축복을 내려 주실 것 같습니까? 물론 감사하는 사람에게 일 것입니다. 우리는 적어도 받은 사랑과 은혜에는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감사는 반드시 구체적으로 표현이 되어야 합니다. 말로만의 감사보다는 우리의 귀한 것을 드려 감사한다면 이것이 더욱 진정한 감사가 되지 않을까요? 지난 한 해 동안에 받은 축복들을 하나하나 세어보면서 하나님께 깊은 감사를 드리도록 하십시다. 그러므로 감사하는 자들에게 따라오는 모든 축복들을 또한 누리시게 되기를 바랍니다.
3. 예수님은 돌아온 그 사람과 대화하시면서 누구를 찾으셨습니까? (눅 17:17)
돌아오지 않은 나머지 9사람
한 사람이 예수님께 돌아와서 사례했을 때 예수님은 그를 칭찬하기에 앞서 그에게 한 가지를 물으셨습니다. “분명 10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런데 그 아홉은 지금 어디 있느냐?” 예수님은 한 사람만이 당신께 돌아와서 사례하였을 때 참으로 안타까왔던 것입니다. 돌아온 그 사람이 제대로 충분한 사례를 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돌아오지 않은 다른 9명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으셨던 것입니다. 참으로 우리 인간은 뻔뻔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아니 이럴 수가 있습니까? 바로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있는 힘을 다해 자신들의 병을 고쳐달라고 애원복걸 할 때는 언제고 이제는 그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되고 나니까 모른체하는 그 모습, 바로 이 무지하고 배은망덕한 9명의 사람들 중에 혹시 우리 자신들이 끼어있지는 않습니까? 가정의 문제를 놓고, 직장의 문제를 놓고, 사업의 문제를 놓고, 건강의 문제를 놓고, 학교의 문제를 놓고,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어 이제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불쌍히 보시고 그 문제를 해결해 주셨건만 그 옛날 그 때의 생각은 아량곳 없이 그저 문제 해결 자체에만 만족하고 하나님을 멀리하지는 않았습니까? 우리 주님은 돌아오지 않은 9사람을 찾으셨습니다. 혹시 하나님께서 우리 자신들을 찾으시고 계시지는 않을까요? 사실 하나님께서는 우리로부터 무슨 사례를 원하셔서 우리를 찾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을 원하시고, 우리에게 더욱 큰 축복을 주시기 위해서 찾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하여 돌아와서 사례한 1사람만이 영혼의 구원을 받은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19절을 보시면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이것은 우리에게 무슨 의미를 던져주고 있습니까? 하나님께 감사하는 자에게는 육적인 축복 외에 영적인 축복도 하나님께서는 베풀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감사를 잘하는 사람은 영적인 축복도 많이 받습니다. 주님은 10사람 중 1사람만이 이러한 영적 축복을 받게 된 것이 안타까우셨던 것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께 감사하는 생활을 잊지 말도록 합시다. 이것이 결국 우리에게는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적용:
1. 나는 종종 문제를 놓고 열심히 하나님께 간구했으나 그 문제 해결 후엔 진정한 감 사를 하나님께 드리지 못하고 살진 않았습니까?
2. 나는 감사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표시하고 살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