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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 4월의 말씀(고전 15:12-22)

본문: 고전 15:12-22

참고말씀: 요 11:25-27, 히 11:17-19

목표: 우리 모두 부활의 신앙을 소유함으로 소망가운데 승리하는 삶을 살도록 하자.

보통 세상 사람들은 지구상 위의 모든 생물이 한 번 죽으면 끝이라는 철학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우리 인간도 저들은 포함시키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들의 삶의 목적은 이 지구 위에서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구약에서 이미 암시된 부활의 진리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비로소 폭로하심으로 부활의 실제는 명백해 졌습니다. 주님은 부활에 대해서 말씀만 하신 것이 아니라 자신 스스로가 죽음에서 부활하심으로 부활의 사실을 입증해 주셨습니다. 부활은 우리 모든 인간들에게 환희와 두려움을 동시에 가져다줍니다. 왜냐하면 요 5:29은 말씀하기를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고 뚜렷하게 말씀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에게는 부활의 신앙이 있습니까? 그리고 부활에 대한 당신의 마음은 평안입니까, 불안입니까?

1. 고린도 교회의 교인들 중에 죽은 자의 무엇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는가? (고전15:12)

  부활

고린도는 바울 사도 당시 헬라 문화의 영향을 받아 인간의 부활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행 17장을 보면 바울이 고린도에서 예수의 부활에 대해 강론을 했을 때 저들은 바울을 기롱했던 것입니다. 이 부활에 대한 불신의 여파가 어느덧 고린도교회 안으로도 들어와 있었습니다. 그래서 고린도교회 교인들 중에는 부활이란 당치도 않은 소리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지나간 옛날 얘기로만 지나칠 수 있는 말이 아닙니다. 오늘날 미국 내의 많은 교회들은 약 100년 전 이 땅에 뿌리를 내린 자유주의 신학의 큰 영향을 받아 부활을 통 믿으려고 하지를 않습니다. 약 10년 전의 통계에 의하면 미국 그리스도인들의 약 70% 정도가 부활을 믿지 않는 것으로 보도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부활은 더 이상 고린도교회의 문제만이 아니요 오늘날 존재하는 21세기의 모든 교회들에게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중에는 분명 장례식에서 죽은 시신을 바라보면서 “이 사람이 과연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의심을 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다시 살 수 있는가?” 이것은 조물주를 향한 우리 인간의 끊임없는 질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약시대와 신약시대에 걸쳐서 우리 인간들에게 여러 가지 실례를 보여 주시면서 사람이 죽어도 다시 살아난다는 사실을 입증해 주셨습니다. 구약에서 우리는 사르밧 과부의 아들이 죽었을 때 엘리야가 그를 살리는 사건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신약에서 우리는 대표적인 예로 죽은 지 나흘이나 되었던 나사로가 다시 살아나는 관경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많은 무덤들이 열려 성도들이 살아난 모습을 우리는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자신도 죽음에서 사흘 만에 살아나셔서 여러 사람들에게 수차례에 걸쳐서 나타난 사건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부활은 사람이 지어낸 소설이 아닙니다. 부활은 그 자체가 사실 그대로입니다. 히 9:27을 보시면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렇게 말씀합니다. 사람은 이 세상에 한 번 태어났다가 죽는 것으로 결코 끝나지 않습니다. 죽은 후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들은 죽은 후에도 심판을 받기 위해 반드시 부활해야 하는 것입니다. 특정한 사람들만이 심판을 받기 위해 부활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부활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 5:29을 보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이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한다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반드시 우리 모든 인간은 부활하는 것이요, 이 부활된 몸은 영생 혹은 영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아무리 다가올 심판이 두려워서 부활을 억지로 부인하려고 한다 하다라도 부활은 저들에게 찾아올 것입니다. 요 5:29의 “선한 일을 행한 자”에 대해 오해하지는 마십시오. 여기에서 말씀하는 선한 일이란 선행 곧 착한 일을 두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우리 인간이 행함으로 구원을 얻지 못한다고 분명히 말씀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선한 일입니까? 과연 누가 진정 선할 일을 행하는 자라는 말입니까? 이것은 우리가 요 5장의 문맥을 살펴보면 쉽게 알 수가 있습니다. 주님은 요 5:24에서 “또 나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곧 요 5:29의 선한 일을 행한 자란 하나님을 믿는 자를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동일한 본문에서 말씀하는 악한 일을 행한 자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입니다. 부활은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셨기에 이것은 폐지 될 수가 없습니다. 분명 모든 세상 사람들이 부활할 때가 올 것인데 모든 부활이 똑같은 부활이 아닙니다. 생명의 부활과 심판의 부활로 나누어집니다. 곧 천국에서의 영생과 지옥에서의 영벌입니다. 누가 영생을 얻고 누가 영벌을 받습니까? 하나님을 믿는 자는 영생을 얻고, 하나님을 안 믿는 자는 영벌을 받을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면 우리는 부활에 대해서 조금도 두려운 마음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사실 두려운 마음이 아니요 기쁘고 즐거운 마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를 내가 아직 믿지 않는다면 부활은 두려움을 가져야 줄 것입니다. 우리 주위에서 아직 하나님을 믿지 않고 부활을 일부러 부인하면서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까? 저들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하십시다. 더 이상 부활에 대해 두려운 생각을 갖지 않고 오히려 기대되고 평안한 마음을 저들도 가질 수 있도록 말입니다.

2.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지 못하셨다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과 또한 무엇이 헛것이라고  바울  사도는 말씀했는가? (고전 15:14)

    믿음   

믿음이 없이는 기독교는 존재하지 못합니다. 믿음이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에 있어서 기초가 되고 있습니다. 고전 13:13을 보시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어야 한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믿음이 없이는 소망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요, 믿음 없이는 사랑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다 예수를 믿고 신앙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면 예수를 믿는다는 말은 무엇입니까? 이 말은 상당히 간단한 것 같으면서도 복잡하고, 또한 복잡한 것 같으면서도 간단합니다. 문제는 어떤 예수를 누구로 믿느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는다고 보통 말을 하지만 내가 어떤 예수를 믿는가에 따라 구원이 있을 수가 있고 없을 수가 있습니다. 여호와의 증인은 예수를 피조물로만 인정하지 하나님으론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증인은 구원과는 거리가 멉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할 때에는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분은 성육신하신 분입니다. 예수님의 신성을 부인하고서는 구원에 이를 수 없습니다. 이제 어떤 예수를 믿는가에 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우리가 믿는 예수는 부활하여 살아계시는 예수라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를 믿지 않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기도교의 믿음은 반드시 예수의 부활을 포함합니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는 말씀하시기를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이 헛것이라고 말씀했던 것입니다.  롬 1:17 하반절을 보면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말씀합니다. 바로 종교 개혁자인 Martin Luther가 이 말씀에서 은혜를 받고 변화했다고 전해져 내려옵니다. 여기에서 말씀하는 의인이란 쉽게 말하면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씀할 수가 있습니다. 곧 우리 그리스도인들입니다. 맞습니다.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사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에게 믿음이 없다면 우리는 살 가치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러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에게 너무나 중요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기 때문입니다. 내가 비록 내 눈으로 보지 못했지만 우리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 믿음의 중요 요소입니다. 그러므로 만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지 못하셨다면 우리의 믿음은 헛것이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의 부활을 믿지 않고도 예수를 여전히 믿을 수가 있다고 말을 합니다. 이것은 성경적인 말이 아닙니다. 상당히 비 성경적입니다. 예수의 부활을 믿지 않고 예수를 믿는다는 말을 할 때 그 예수는  우리 기독교에서 말씀하는 예수가 분명 아닙니다. 부활이 없다면 믿음도 없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믿음은 정당한 믿음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가치 없는 헛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믿음은 우리를 하늘나라로 인도하는 가치있는 것입니다. 이 믿음을 소유하신 사실에 대해서 자부심을 가지고 하나님께 감사드리시기 바랍니다.

3. 그리스도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이생뿐이면 우리는 결국 어떠한 사람들이라고 바울사도는 말씀했는가? (고전 15:19)

모든 사람 가운데 더욱 불쌍한 자들

부활은 믿는 자들에게 있어서 분명한 소망입니다. 그런데 만일 세상 사람들의 말처럼 부활이 없다면, 곧 이 지구 위에서의 삶으로 우리의 모든 것이 끝장이라면 정말 그리스도인들만큼 불쌍한 사람들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 믿음의 선진들이 부활의 소망을 바라봤기에 순교도 하지 않았습니까? 바로 이들이 부활의 소망을 바라봤기에 갖은 고생과 핍박도 기쁨으로 감수하지 않았습니까? 사실 세상에 살았던 어느 그리스도인도 바울 사도만큼의 끔찍한 고생을 한 사람도 아마 없을 것입니다. 그는 고후 11:23이하에 자신이 치른 고생담을 우리에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심한 고생을 한 바울 사도에게 있어서 다만 이 지구 위의 삶으로 모든 것이 종결되어지고 부활이 끝내 없다면 얼마나 바울은 불쌍한 사람이겠습니까? 아마 우리들은 바울만큼 불쌍하지는 않으나 만일 부활이 없다면 우리들도 분명 불쌍한 사람들이 될 것은 분명합니다. 청청하고 맑은 주일 아침, 세상 사람들은 야외로 놀러갈 때 교회에 늘 나왔던 우리들, 생활이 넉넉하지 않은 중에서도 하나님께 헌금을 믿음으로 꼭꼭 드렸던 우리들, 전도하다가 문적박대를 당해 톡톡히 창피를 당했던 우리들, 기도회 모임에 간다고 가족들의 구박을 받았던 우리들, 금식기도한다고 먹고 싶은 것도 참고 지냈던 우리들, 이런 우리들이 아닙니까? 비록 부족하지만 그래도 신앙으로 살려고 했던 우리들에게 부활이 없고 이 세상의 삶으로 모든 것이 끝이라면 우리는 정말 세상 모든 사람가운데 더욱 불쌍한 자임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밝히 말씀하시기를 우리는 세상 모든 사람 가운데 더욱 불쌍한 자가 아니요 가장 복된 자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앞으로 반드시 부활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계 20:6을 보시면 “이 첫째 부활에 참예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라고 말씀합니다. 부활은 사실이기에 우리는 불쌍한 자가 아닙니다. 진정 부활은 사실이기에 우리가 불쌍한 자가 아니요 부활이 없다 하는 세상 사람들, 곧 하나님을 믿지 않는 저들이 정말로 불쌍한 자들입니다. 우리는 세상에 사는 동안 그리스도를 위해서 당하는 고통을 부정적이 아닌 긍정적인 눈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마치 바울 사도가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고 고백한 것처럼 우리에게도 이러한 멋진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를 불쌍한 눈으로 바라볼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희생하기에 세상 사람들이 나를 불쌍히 여기는 만큼 앞으로 하늘나라에서는 그만한 상급이 또한 보장되어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이 세상에서의 주를 위한 수고와 노력이 헛되지 않은 것은 우리에게 부활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부활의 신앙을 가지십시오. 우리에게 부활의 신앙이 있을 때에 그리스도인들을 보는 나의 눈과 또한 세상 사람들을 보는 나의 눈은 더욱 달라질 것입니다. 부활을 믿지 않는 모든 사람들, 정말 이들이야 말로 자신에게 임할 심판을 모르고 사는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이들에게 우리의 관심을 돌리도록 합시다. 왜냐하면 저들이야말로 정말 모든 사람들 가운데 더욱 불쌍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적용:

1. 나는 주님 안에서 세상을 떠난 사랑하던 내 주위의 사람들이 앞으로 부활할 것을 상상해 보면서 기뻐한 적이 있는가?

2. 모든 인간이 분명 부활할 것으로 믿는다면 나는 현재 내 주위의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서 어떠한 행동을 취해야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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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itleDate
15 고넬료의 가정2013.06.01
14 2013 – 4월의 말씀(고전 15:12-22)2013.04.15
13 2013 – 3월의 말씀 (눅 23:32-43)2013.04.01
12 은혜의 말씀2013.02.10
11 2013 – 2월의 말씀(막 9:14-29)2013.02.08
10 2013 – 1월의 말씀(행 16:16-34)2013.01.02
9 2012 – 11월의 말씀(눅 17:11-19)2012.11.01
8 2012 – 10월의 말씀(딤후 2:20-22)2012.10.01
7 2012 – 8월의 말씀(살전 5:16-22)2012.08.01
6 2012 – 7월의 말씀(눅 16:19-31)2012.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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