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족보
찬송 : 찬송가 511장 (새찬송가 314장)
2014-01-18 [마태복음(Matthew) 1:1 – 1:17]
마태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로 시작합니다. 이 족보는 가장 마지막에 나오는 예수님의 정체가 무엇인지 밝혀줍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세상의 진정한 왕이시며 죄에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는 분입니다.
1 |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
2 |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들을 낳고 |
3 |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헤스론은 람을 낳고 |
4 |
람은 아미나답을 낳고 아미나답은 나손을 낳고 나손은 살몬을 낳고 |
5 |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
6 |
이새는 다윗 왕을 낳으니라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
7 |
솔로몬은 르호보암을 낳고 르호보암은 아비야를 낳고 아비야는 아사를 낳고 |
8 |
아사는 여호사밧을 낳고 여호사밧은 요람을 낳고 요람은 웃시야를 낳고 |
9 |
웃시야는 요담을 낳고 요담은 아하스를 낳고 아하스는 히스기야를 낳고 |
10 |
히스기야는 므낫세를 낳고 므낫세는 아몬을 낳고 아몬은 요시야를 낳고 |
11 |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갈 때에 요시야는 여고냐와 그의 형제들을 낳으니라 |
12 |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후에 여고냐는 스알디엘을 낳고 스알디엘은 스룹바벨을 낳고 |
13 |
스룹바벨은 아비훗을 낳고 아비훗은 엘리아김을 낳고 엘리아김은 아소르를 낳고 |
14 |
아소르는 사독을 낳고 사독은 아킴를 낳고 아킴은 엘리웃을 낳고 |
15 |
엘리웃은 엘르아살을 낳고 엘르아살은 맛단을 낳고 맛단은 야곱을 낳고 |
16 |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 |
17 |
그런즉 모든 대 수가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열네 대요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갈 때까지 열네 대요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후부터 그리스도까지 열네 대러라 |
예수님은 어떤 분입니까?
전체 왕으로 오신 하나님의 메시아입니다. 예수님의 족보에 많은 사람이 등장하지만,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고 있습니다. 족보는 오늘날의 이력서와 마찬가지로 과연 이 사람의 정체가 무엇인가를 밝혀주는 일을 합니다. 예수님은 다윗의 자손으로서 왕가의 혈통을 이어받으셨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식민지였고 헤롯 왕은 로마가 정책상 세워둔 군대 사령관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왕가의 혈통을 이어받은 그리스도의 족보를 글의 서두에 두는 것은 정치적인 선언과 같습니다. 즉 모든 예언을 속속들이 성취하러 오신 분, 사람들이 오랫동안 기다려온 분, 하나님이 기름 부으신 ‘메시아’라는 것입니다.
3~6,16절 우리의 신분을 바꾸시고 우리의 인생을 구속하시는 구원자이십니다. 다말과 룻은 아들이 없는 여인으로써 ‘구속자’(고엘)를 통하여 아들을 낳았습니다. 가나안 기생이었던 라합은 보아스의 어머니가 되었고, 모압 과부 룻은 보아스의 남편이 되었습니다. 이 여인들이 예수님의 족보에 기록되어 있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죄인인 우리의 신분을 바꿔주시고, 잃어버린 기업을 되찾아주기 위해 오셨음을 보여줍니다. 나는 예수님이 바꿔주신 새로운 신분과 구속의 은혜에 어울리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내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전체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식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합니다. 예수님의 족보에는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 부끄럽고 감추고 싶은 이야기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놀라운 사실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방식과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셨던 것처럼, 사람들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일하셨습니다. 오늘 우리 삶 속에서도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놀랍게 일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따릅시다.
기도
공동체-죄와 문제투성이의 인생을 살아가는 저를 구원하시려고 예수님을 보내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열방-지난 20년 동안 문맹자의 비율이 감소했지만 아직도 세계 성인 중 7억 5천만 명 정도가 글을 읽거나 쓸 줄 모른다. 문맹자들이 글을 배워 성경을 읽도록 돕는 문해사역이 잘 펼쳐지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