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혈육이 예배하리라
찬송 : 찬송가 167장 (새찬송가 179장)
2013-06-30 [이사야(Isaiah) 66:15 – 66:24]
하나님은 심판의 상징인 불과 함께 강림하시며, 모든 혈육은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예배하는 자를 열방에서 불러 모으고, 거역하는 자를 심판하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구원도 온 열방 가운데서 나타납니다.
15 |
보라 여호와께서 불에 둘러싸여 강림하시리니 그의 수레들은 회리바람 같으리로다 그가 혁혁한 위세로 노여움을 나타내시며 맹렬한 화염으로 책망하실 것이라 |
16 |
여호와께서 불과 칼로 모든 혈육에게 심판을 베푸신즉 여호와께 죽임당할 자가 많으리니 |
17 |
스스로 거룩하게 구별하며 스스로 정결하게 하고 동산에 들어가서 그 가운데에 있는 자를 따라 돼지 고기와 가증한 물건과 쥐를 먹는 자가 다 함께 망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
18 |
내가 그들의 행위와 사상을 아노라 때가 이르면 뭇 나라와 언어가 다른 민족들을 모으리니 그들이 와서 나의 영광을 볼 것이며 |
19 |
내가 그들 가운데에서 징조를 세워서 그들 가운데에서 도피한 자를 여러 나라 곧 다시스와 뿔과 활을 당기는 룻과 및 두발과 야완과 또 나의 명성을 듣지도 못하고 나의 영광을 보지도 못한 먼 섬들로 보내리니 그들이 나의 영광을 뭇 나라에 전파하리라 |
20 |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스라엘 자손이 예물을 깨끗한 그릇에 담아 여호와의 집에 드림 같이 그들이 너희 모든 형제를 뭇 나라에서 나의 성산 예루살렘으로 말과 수레와 교자와 노새와 낙타에 태워다가 여호와께 예물로 드릴 것이요 |
21 |
나는 그 가운데에서 택하여 제사장과 레위인을 삼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
22 |
내가 지을 새 하늘과 새 땅이 내 앞에 항상 있는 것 같이 너희 자손과 너희 이름이 항상 있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
23 |
여호와가 말하노라 매월 초하루와 매 안식일에 모든 혈육이 내 앞에 나아와 예배하리라 |
24 |
그들이 나가서 내게 패역한 자들의 시체들을 볼 것이라 그 벌레가 죽지 아니하며 그 불이 꺼지지 아니하여 모든 혈육에게 가증함이 되리라 |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15~17절 하나님은 세상을 심판하십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의 창조는 옛 하늘과 옛 땅의 심판에서 시작됩니다. 기경한 다음에 씨를 뿌리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감정적인 노여움이 아니라 불의한 세상, 사람을 포로와 노예로 삼는 잘못된 체제에 대한 거룩한 분노로 심판하십니다. 타락한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아픔과 분노가 느껴집니까?
18,19절 하나님은 세상을 구원하십니다. 심판의 궁극적 목적은 구원입니다. 꺼지지 않을 듯한 주의 노여움도 당신의 세상과 당신이 창조한 사람에 대한 사랑 때문입니다. 바벨론의 포로로 사는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그곳의 주민, 더 나아가 온 세상을 구원할 것입니다. 모두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광을 목도할 날이 도래합니다. 이스라엘이 듣도 보도 못한 만민이 구원의 대열에 설 것입니다. 그 대열에 합류하게 하신 은혜를 감사합시다.
내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20~23절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예배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구원한 뭇 백성이 예배드리는 것은 자연스럽습니다. 이스라엘의 특권이었고, 혈통적 권리였고, 우월감의 근거였던 것을 만민에게 개방하십니다. 그리하여 모든 신자가 제사장이 되었습니다(벧전 2:9). 우리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성도일 뿐만 아니라 예배하게 하는 성도이어야 합니다. 나는 예배를 돕고 있습니까? 도움만 받고 있습니까?
어떤 사람은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이사야는 충격적인 말로 예언을 마칩니다. 시체를 파먹는 벌레와 꺼지지 않는 불과 함께하는 심판이 마지막 말입니다. 열방의 회복이 헛된 기대와 오해를 주지 않도록 막는 장치입니다. 누구라도 자동적으로 구원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심판을 선언하는 처음(17절)과 마지막 구절 사이에는 열방의 구원과 예배가 자리합니다. 심판에서 열외일 수 없는 내 영혼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날 구원하신 주를 예배합시다.
기도
공동체-삶으로 예배하고, 이웃과 함께 예배하고, 불신자를 불러 예배하게 하소서.
열 방-한국 개신교 선교사의 증가율이 눈에 띄게 감소하여 이제는 선교사 수의 정체 또는 감소를 우려할 정도다. 한국 교회의 선교가 질적인 성장에 의한 새로운 도약을 맞이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