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과 율법
찬송 : 찬송가 202장(새찬송가 268장)
2013-05-06 [갈라디아서(Galatians) 3:10 – 3:18]
바울은 율법 행위에 속한 자는 저주 아래 있다고 선언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되고 아브라함의 복과 성령의 약속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은 율법에 우선합니다.
10 |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에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
11 |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도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니라 |
12 |
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니 율법을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살리라 하였느니라 |
13 |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
14 |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 |
15 |
형제들아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사람의 언약이라도 정한 후에는 아무도 폐하거나 더하거나 하지 못하느니라 |
16 |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한 사람을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 |
17 |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신 언약을 사백삼십 년 후에 생긴 율법이 폐기하지 못하고 그 약속을 헛되게 하지 못하리라 |
18 |
만일 그 유업이 율법에서 난 것이면 약속에서 난 것이 아니리라 그러나 하나님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에게 주신 것이라 |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13,14절 하나님은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심으로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경계의 담(‘율법’)을 허물어 이 둘을 그리스도 안에서 한 백성이 되게 하셨고, ‘죄인’(2:15) 취급받던 이방인들도 아브라함의 복(‘성령의 약속’)에 참여하게 하셨습니다. 죄와 율법의 노예로 살던 우리를 ‘속량하여’ 은혜와 성령의 통치 아래에서 살게 하신 것입니다.
내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0절 율법으로는 의롭게 될 수 없습니다. 왜냐면 율법은 단 하나만 어겨도 우리를 죄인으로 정죄하고 저주를 선고하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온전한 자가 없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지 않는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심판과 저주 아래 놓여 있다는 이 고백이 내 인생과 신앙의 기저에 있는지 더듬어봅시다.
11,12절 율법을 따라 사는 길과 믿음으로 사는 길은 중립지대를 허용하지 않으며 양립할 수도 없습니다. 바울은 성경(합 2:4; 레 18:5)을 인용하여 그 누구도 율법을 ‘항상’ 그리고 ‘모두’ 지킬 수 없으며, 믿음만이 의와 생명을 얻는 유일한 길이요 의인의 삶의 방식이라고 논증합니다. 하나님은 율법의 행위가 아닌 은혜의 원리를 따라 믿음의 방법으로 우리를 당신의 백성으로 만드십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으니, 또한 믿음으로 의롭게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
15~18절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약속하신 유업은 ‘율법’이 아니라 ‘언약’에 기초한 것이며, 430년 후에 생긴 율법이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신’ 언약을 폐기하거나 무효화할 수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유업을 받기 위해 율법의 행위를 지켜야 한다는 거짓 교사들의 주장은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실 하나님의 약속과 경륜과 은혜를 저버리는 일이고 율법의 저주 아래 다시 들어가는 일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유업을 상속받을 자녀가 되고 성령 안에서 참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것은 외적인 율법준수가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의 구속을 통해서만 가능한 역사요 복임을 잊지 맙시다.
기도
공동체-저주 아래 있던 저희를 속량하여 하나님 나라의 유업을 얻게 하신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열 방-‘묵상과 설교’ 창간 1주년 기념 묵상목회 세미나가 오늘 대구서문교회에서 오후 1시부터 열린다. 이 세미나를 통해 영남권 목회자들이 묵상목회의 소망을 품을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