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약 1:26-27
참고말씀: 롬 12:2
목표: 참 신앙을 소유함으로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우리가 되도록 하자.
요즘은 참으로 가짜가 많은 세상입니다. 좋은 것일수록 가짜는 늘 뒤를 쫓아다닙니다. 그런데 요즘 그리스도인들의 신앙도 보면 가짜가 종종 발견되곤 합니다. 입으로는 예수를 믿는다곤 하는데 전혀 행동이 뒷받침하지 않고 있는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그럼 나의 신앙은 참 신앙일까요, 가짜 신앙일까요? 야고보서는 참 신앙을 소유한 사람의 두 가지 뚜렷한 특성을 잘 묘사해 주고 있습니다. 이 신앙이야말로 하나님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신앙이라고 야고보 선생은 말씀해 줍니다. 우리는 진정 이러한 신앙을 소유해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 모두 새로 출발하는 2012년도에는 참 신앙을 가지고 살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생활을 하도록 합시다.
1. 누구의 경건은 헛된 것이라고 야고보 선생은 말씀해 주고 있습니까? (약 1:26)
스스로 경건하다고 생각하며 자기 마음을 속이는 사람
자신을 속일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있을까요? 우리가 남을 속일 수 있다는 것은 쉽게 이해가 되지만 자신을 속인다는 것은 얼핏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과연 우리는 자기 자신에게 속을 수가 있을까요? 성경은 이 질문에 대해서 “네”라고 대답을 합니다. 그럼 어떻게 하는 것이 자신을 속이는 일입니까? 약 1:22을 보면 “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고 했습니다. 곧 하나님 말씀을 듣기만 했지 그 말씀대로 행하지 않는 자를 가리켜서 자신을 속이는 자라고 말씀합니다. 약 1:26-27은 “경건”에 대해서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영어 NIV 성경은 이것을 Religion이라고 번역했습니다. 곧 이것은 신앙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약 1:26을 다음과 같이 번역할 수가 있습니다. “누구든지 스스로 신앙이 있다고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먹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신앙은 헛것이라” 자, 누구의 신앙이 헛것이라고 했습니까? 스스로 신앙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자기 마음을 속이는 사람, 다시 말해서 스스로 신앙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 말씀을 듣기만 했지 전혀 행하지 않는 사람, 이런 사람의 신앙은 헛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들으면 뭐합니까? 들은 말씀을 행함으로 옳기지 않는다면 헛것이라는 말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우리의 살아있는 믿음을 요구합니다. 다시 말해서 말씀을 들었으면 생활에 실천하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자에게 놀라운 기적을 베푸시고 축복을 내리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약 1:25을 보면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그런데 말씀을 듣고도 행하지 않는 사람, 이 사람은 자신에게 속는 사람이요 그의 신앙은 쓸모없는 신앙입니다. 그렇다면 나의 신앙은 어떻습니까? 혹시 요즘 나는 나를 속이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가 이렇게 힘들게 이민 생활을 하면서 주일날 교회에 오고, 수요 예배, 셀 모임, 선교회 모임, 또 각종 교회 행사를 위해 바쁘게 뛰면서도 우리의 신앙이 헛것이라면 세상에 우리보다 불쌍한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절대로 자신에게 속지 마십시오. 금년 한 해, 헛된 신앙생활을 해서 되겠습니까? 차라리 남에게 속을망정 자신에게는 속지 마십시다.
2. 하나님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의 첫 번째 요소는 무엇입니까? (약 1:27)
고아와 과부를 환난 중에서 돌아보는 일
야고보서는 침 신앙과 가짜 신앙이 어떻게 다른가를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가짜 신앙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전혀 행하지 않는 신앙이라고 한다면 참 신앙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행하는 신앙입니다. 그런데 야고보 선생은 참 신앙에 대해 언급하면서 가장 먼저 강조했던 점이 고아와 과부를 환난 중에서 돌아보는 일이었습니다. 나만 잘 먹고, 나만 잘 살고, 나만 잘 입으면 다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환난 중에서 헐벗고, 못 먹고, 잠자리가 없어서 이리저리 헤매는 영혼들을 돌아보는 일, 과연 이 일을 하는 사람이 참 신앙을 갖고 있는 사람입니다. 야고보서는 침 신앙에 대해서 말씀하면서 “그 사람은 기도 많이 하는 사람이다, 그 사람은 성경 많이 읽는 사람이다, 그 사람은 찬양 많이 하는 사람이다, 그 사람은 헌금 많이 하는 사람이다.”라고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이와 같은 것들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참 신앙에 있어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열매는 환난에 처해 있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행위라고 말씀합니다. 나는 이 참 신앙을 소유하고 있습니까? 우리 이 시간 자신들의 신앙을 점검해 봅시다. 우리가 혹시 입술로만 신앙생활을 하고 있진 않습니까? 지금 우리 교인들 중에 누가 돈이 없어서 따뜻한 잠바 하나 못 사 입고, 이 추운 겨울에 낡아빠진 얇은 잠바 하나 입고 벌벌 떨고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그리고 내가 지금 이 사람의 형편을 잘 알고 있다고 합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내게 참 신앙이 있다는 증거를 어떻게 보일 수 있을까요? 이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일까요? 이 사람을 찾아가서 참 안 됐다고 위로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이 사람을 위해서 따뜻한 잠바를 하나 구해 그에게 갖다 주는 것일까요? 무엇이 참 신앙입니까? 약 2:15-16은 분명하게 말씀해 줍니다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잠 19:17은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 주시리라”고 말씀해 줍니다. 마 10:42에도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합니다. 이왕 신앙을 가지고 평생을 살겠다고 작정했다면 우리 모두 참 신앙을 가지고 살도록 합시다. 이런 신앙이야말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신앙이요, 우리가 복 받을 수 있는 신앙입니다.
3. 하나님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의 두 번째 요소는 무엇입니까? (약 1:27)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일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유혹을 인간들에게 던져 주고 있는 시대입니다. 인간을 가장 약하게 만드는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라고 한다면 지금 현 시대처럼 사단이 이것들을 통해서 우리 사람들을 쓰러뜨리기 위해서 가까이 접근해 온 때는 일찍이 없었습니다. 이 세상은 악으로 가득 차 있고 사단은 이 세상을 통해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쓰러뜨리려고 안간 힘을 쓰고 있습니다. 주님은 일찍이 이 세상을 어두움으로 비유했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자신을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는 말씀하시기를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한다”고 하셨습니다. 또한 바울 사도는 롬 12:2에서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고 강력하게 호소했습니다. 야고보서에서 참 신앙의 두 번째 요소로서 무엇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참 신앙을 가진 사람은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한다고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다 하니까 나도 해야지. 아닙니다. 저들이 다 해도 그것이 옳지 않는 일이라면 우리는 하지 말아야 합니다. 여기 “세속에 물들다”라는 한국말의 표현이 참 재미있습니다. 우리는 빛이고 세상을 어두움입니다. “세속에 물들다”, 우리는 이 표현을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습니다. 여기 전구가 있다고 합시다. 전구는 환하게 빛을 발산합니다. 그래서 어두움을 밝힙니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산 소망을 주고, 답답함을 이기게 하고, 두려움을 몰아냅니다. 세상은 어두움입니다. 그리고 어두움을 대표하는 색깔은 검정색입니다. 환하게 빛을 발했던 그 전구, 이 전구를 한 번 까만 검정색깔의 싸인펜으로 칠해 보십시오. 그 전구가 빛을 재대로 발하겠습니까? 맞습니다. 우리가 세속에 물들어 버리면 우리는 빛을 제대로 발할 수 없습니다. 참 신앙이란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신앙이 있다고 입으로 말하면서 세상 사람들과 전혀 다를 바 없이 똑 같이 사는 사람, 이 사람은 자신의 믿음에 question mark를 달아보아야 합니다. 야고보서는 참 신앙을 말하면서 참 신앙의 두 가지 요소를 말했습니다. 환난에 처해 있는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는 일과 세속에 물들지 않는 일, 그런데 이 두 가지는 서로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세속에 물들 때, 곧 우리가 세상적이 되어 버릴 때에 우리의 관심은 어려운 중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멀어진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세속화가 될수록 바라보이는 사람은 자기 자신밖에 없습니다. 이 사람은 자기 만족만을 위해 사는 사람입니다. 남들에 대해선 전혀 상관 안 하고, 자기만 잘 먹고, 잘 입고, 잘 사는데만 신경을 쓰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절대 세속에 물들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 고백은 “세상과 나는 간 곳 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도다” 이 신앙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적용
1. 어려운 환경 속에 처해 있는 사람들을 보며 실질적인 도움을 마지막으로 준 때는 언제인가?
2.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라고 잠 19:17은 말씀해 주고 있는데 과연 하나님께서는 내게 얼마나 꾸셨을까?